조각가 박시동 인터뷰

■ 조각공원의 길을 택한 이유

1990년, 서른의 나이에 연천 최전방 산속에 터를 잡았습니다. 길도, 전기도 없던 곳이었지요.
부모님은 “미쳤다”고 하셨지만, 제 눈에는 그 공간이 가장 희망적으로 보였습니다.

4년간의 교직 생활도 보람 있었지만, 제 인생의 길은 따로 있었습니다.
주변의 의아함과 오해 속에서 일당 3만원의 농장일도 하며 버텼습니다.
다행히 지인들의 도움으로 지금의 조각공원을 일구게 되었죠.

돌이켜보면 찰나 같지만, 그 시간 속엔 헤아릴 수 없는 이야기가 깃들어 있습니다.



■ ‘발(足)’과 ‘손(手)’ 모티브의 의미

“제 작품 속 ‘발’과 ‘손’은 존재의 출발점이자 흔적입니다.
사람이 서고, 걷고, 만지는 행위 속에는 삶 전체가 담겨 있습니다.

‘걷고 만진다’는 것은 단순한 동작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 증거이자 평화를 향한 여정이지요.
발자국과 손은 흔적을 남기며, 언제나 새롭게 시작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 모티브를 통해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 민통선예술제의 탄생

“1999년, 제1회 민통선예술제를 열었습니다.
겉으로는 작은 지역 축제였지만, 그 속에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이념의 경계에서 예술이 평화를 말할 수 있을까?’
저는 청소년들에게 예술이 마음의 다리가 되길 바랐습니다.
그 예술제는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분단의 땅에서 인간성을 회복하자는 예술적 실험의 장이었습니다.”



■ 예술제가 남긴 보람과 성취

“20여 년 동안 많은 세계의 예술가들과 함께했습니다.
가장 뜻깊었던 순간은 서로 다른 장르의 작가들이 ‘이념’의 벽을 넘어 협업하던 장면이었습니다.

특히 제10회 ‘상생의 땅’ 주제공연은 모든 관객이 숨죽여 지켜본 감동의 순간이었죠.
그것은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평화를 몸으로 표현한 예술이었습니다.


■ 민통선예술제는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20년의 인내에도 한계는 있었습니다.
권력자의 음악회에는 수억 원이 지원되는 현실 앞에서, 함께해준 작가들에게 미안함과 부끄러움으로 지원금을 포기하였습니다.

그러나 백열등 하나 켜진 작은 무대, 통기타 소리 하나로 울려 퍼지던 밤이 오히려 더 큰 감동이었습니다.
예술제는 우리 마음속에서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 다양성을 품은 전시 철학

“박시동미술관은 조각뿐 아니라 설치, 영상,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를 포용합니다.
예술은 고정된 틀 안에서 자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DMZ가 수많은 생명과 이야기를 품듯, 미술관도 다양성의 실험실이어야 합니다.
서로 다른 장르가 스며드는 그 경계의 흐름 속에서 저는 ‘평화’와 ‘공존’의 미학을 찾습니다.”



■ ‘종합예술대안학교’의 꿈

“젊은 시절부터 ‘종합예술대안학교’를 꿈꿔왔습니다.
장르의 구분 없이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공간, 그것이 제 꿈이었습니다.

이곳은 단지 전시장이 아니라 교류의 장입니다.
앞으로 박시동미술관이 ‘연천의 예술학교’, 혹은 ‘평화 예술의 산실’로 기억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 예술가로서의 새로운 도전

“예술가로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이제 압니다.
황산의 절벽 끝에서 느꼈던 고소 공포처럼, 예술은 감동과 공포를 동시에 줍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 낭떠러지 끝에서 또다시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 맺음말

“예술을 ‘전쟁하듯 한다’는 말을 들으면 늘 마음이 불편합니다.
예술은 경쟁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스스로의 공간을 만들고, 그 고독을 견디는 일 — 그것이 제가 걸어온 길이며 앞으로도 걸을 길입니다.

지금의 아내는 제 꿈을 완성시켜 준 큰 은인입니다.
홀로 달리던 시절에서 이제는 함께 달릴 수 있게 해준 사람이지요.
35년의 나무 그늘과 그녀의 꽃밭이 어우러져 지금의 제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꿈은 ‘작품만 할 수 있다면 좋겠다’였지만,
이제는 한 작품을 3년 넘게 붙들고 있습니다.
그 작업이 언제 완성될지는 모르지만, 더 이상 조급하지 않습니다.
예술은 기다림 속에서 자라고, 그 기다림이 곧 삶이니까요.”



■ 2003년 첫 개인전

거품시대에 살아남은 조각가, 박시동

다급한 시대의 흐름과 변화는 걷잡을 수 없고 교차되는 극단의 이념사조가 믿을 수 없는 혼돈의 거품 속임수에 빠지기 쉬웠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들의 일상생활의 잡다한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고 호들갑을 떨고 나더니 경박스러운 외형적인 유행에 중독돼 헤어나지 못했다.
초창기(6.25이후) 사기꾼시대가 판을 치고 70년대에는 살아남기 위해 모방의 시대로 권력과 금권의 패거리가 집단이기주의로 군림하더니 급기야 이 나라 사회구조가 모두 조폭시대로 진입하게 되었다. 더욱이 사기꾼시대+모방시대+조폭시대가 뒤엉킨 오늘의 퓨전시대는 진실이 왜곡된 가짜가 진짜로 둔갑 시켰으며 처음부터 병든 미천한 한국미술은 시들어 죽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무지한 태반의 아마추어 작가들이 조폭 이기주의로 판을 치고 있으니 역겨운 기성미술이 대중에서 멀어져가는 것은 당연한 귀결 이었다.

이러한 혼란과 거품미술시대에서도 묵묵히 자기 일만을 고집하는 조각가 박시동은 시대를 뛰어넘는 강한 개성으로 원초적인 인간본능의 인체부분과 촉각 등 만져볼 수 있는 발, 손, 코를 신선한 초현실적 어법으로 비약해 양식화 된 기성미술을 비웃으며 뒤엎었고 재치와 코믹을 자유자제로 헤집고 다니는 겁 없는 조각가이다.
몇 안 되는 용기 있는 제자 중에서도 가장 독보적이며 번득이는 그의 예술성은 너무도 유별나고 탁월해 샘이 날 정도로 부럽기까지 했다. 배짱 좋고, 역동적 순발력은 그만이 가진 특기이며 독창성이기도 하다. 해서 오늘의 혼란스러운 거품시대에 반듯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남이 못하는 자기만의 세계와 독창성이 있어야 진정한 작가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한국에서 독자적인 조각가 박시동을 지침하며 앞으로 패기 넘치는 이 무서운 작가를 꼭 주목해주시기 바란다.

2003년 새해 조각가   이 승 택



풋풋한 자연의 냄새를 느끼게 하는 작가

조각가 박시동은 그의 작업과 작가의 진실이 일치되는 풋풋한 자연의 냄새를 느끼게 하는 작가다. 그의 작업에서는 규칙과 질서보다 평소 생활에서 보여주는 무형식의 자유로움을 읽을 수 있다. 박시동의 작품에서는 난해한 복선을 읽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이 있어서 좋다.
박시동의 작업 대부분은 사람의 모습을 그만의 감성으로 옮겨놓는 일이다. 정교한 뎃상력으로 천진한 사랑으로 조심스레 기쁨 슬픔 우울 분노를 눈 귀 코 그리고 비틀어진 발가락에까지 옮겨놓는다. 그의 작업은 일상의 해학과 풍부한 감성의 표현이면 때론 인체의 깊은 내면을 읽게 해준다. 노골적인 표현이 곤란한 에로티즘의 표현조차 성적농담으로 빙그레 미소 짓게 해 소년시절의 장난스러운 그의 미소를 떠올리게 한다. 그의 솔직하고 담백한 표현은 보편적인 삶을 사는 난해한 문화코드에 혼절한 이 시대의 비문화인 에게도 친근한 예술의 가교가 되어 줄 것을 기대한다.
삶의 방식을 오직 조각가의 길에 두는 그는 산속의 살며 산과 나무, 사람을 가슴과 손끝으로 느끼며 고집스럽게 반복하는 그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

2003년 정월  건축가 최삼영



현대사회를 초월한 비범한 원시인

내가 알고 있는 박시동씨의 성격은 매우 투박하고 직선적이다.
그는 좋아하고 싫어함이 분명하며, 비록 나중에 후회할 것이 뻔하더라도
지금 하고 싶거나 필요한 일이라면 쉽게 저지르고야 말 사람이다.
그에게는 사람을 끌어들이고 휘어잡는 알 수 없는 막강한 힘과
펄펄 끓어오르는 예술에 대한 열정이 있다.
그는 현대사회를 이미 초월한 비범한 원시인이다.
그를 바라보면 현실에 적응 하려고만 애쓰는 나의 자아 부끄러워질 수밖에 없다.

내가 보았던 그의 작품들은 주로 인간의 신체와 영혼을 표현한 것들이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그의 탐구와 작품상의 재해석은 기발하면서도 세련되었다. 그의 대인관계를 보면 별로 계산능력이 없어 보이는데,
그의 작품들은 의외로 균형이 잘 맞고 정교하여서 감탄을 자아낸다.
그가 내뱉는 말들은 비판적이거나 부정적이지만,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온화하고 긍정적이며 포근하다. 그는 마치 아이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지만, 그의 작품들에는 성숙한 정신세계와 폭발적인 힘과 세련된 감정들이 적절히 조화되어있다.
그가 순수함과 무모해 보이는 열정을 지키는 한 그는 불행하면서도 행복할 것이고, 작품세계는 더욱 발전하리라고 믿는다.

용인정신병원 이사장  이충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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